안타까운 엄기영 사장의 사퇴. 그러나 정작 아쉬운건...

2010/02/08 20:32




엄기영 사장이 결국 사퇴를 했다. 압박에 못이겨 사퇴했으리라. MBC는 혼란에 빠졌고 전투체제에 들어간듯 하다. 있을 수 있는 일이다.

문제는 언론이다.

위에 열거해 놓은 스크린 샷을 보자.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C, J, D 신문사를 그리 싫어하지는 않는다. 언론이라는 것이 보수언론과 진보언론이 공존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언론의 기사가 아닌, 그 기사를 읽고 판단하는 국민들이라고 생각한다. 일단은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다시 스크린 샷을 보자. 엄기영 MBC 사장의 사퇴는 분명 큰 사건이다. 대한민국이 들썩일만한 사건이다. 그런데 스크린샷의, 이를테면 '메인기사'에는 엄기영 사장 사퇴소식이 없다. 한겨례 신문만이 비중있게 다룰 뿐이다.
재미있는 것은 D 일보와 C일보는 이제는 관심도 떨어져버린 도요타 사건만을 집요하게 다루고 있다는 것이다. 도요타가 리콜을 해서 우리나라 경제가 흔들렸는가? 우리나라가 뒤집어졌나? 그 이전에 이제는 한물간 도요타 사건이 저렇게 메인으로, 그것도 굵은 글자로 올라갈만 한 이야기던가? 더 재미있는 것은 다른 기사들 또한 스포츠 신문이나 타블로이드 신문에서나 볼법한 이야기들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이다. 밑에는 XX에서 직접 편집합니다. 라는 문구가 있다.

아무리 보수언론이라 하더라도 최소한 사퇴소식 정도는 메인으로 자세하게 다뤄주어야 하는 것이 언론으로서의 예의 아닐까 싶다. 엄기영 사장의 사퇴가 그들에게 어떤 모습으로 비추어졌는지에 대한 사설만이라도 메인으로 올라와 있었다면 C, J, D를 싫어하던 사람들도 "비록 적이지만 훌륭한데?" 식으로 생각해 줬을지도 모른다.

나는 보수신문이 욕을 먹는 이유가 다른 것이 아닌 이런 점이라고 생각한다. 숨긴다고 해결되는 것은 없다. 드러낼 것은 드러내자. 가린다는 것은 그 사건에 대해 이야기 하기를 꺼려한다는 것 밖에는 되지 않는다. 그러면 오히려 마이너스 효과만 날 뿐이다.

나는 대한민국에 진정한 보수도, 진정한 진보도 없다고 생각한다. 이들은, 생각해보면 겁장이들 같다. 특히 언론들이 그렇다. 자신들에게 불리한 사건이 터지더라도 용기있게 그에 관한 기사를 싣는 것을 본 적이 없다. 중요한 것은 자신들이 생각하고 있는 정치적 판단에 대한 확고한 의지다. 그리고 인정할 것은 인정하는 자세이다. 대한민국이 올바르게 나아가려면, 언론부터 변해야 한다. 보다 과감해져야 한다. 그런면에서 보면 한겨례를 비롯한 소위 말하는 진보신문들은 아직까지는 전투적이고 과감하다. 그러나 이들마저 변한다면. 글쎄...대한민국에 미래가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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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판은 도박판

2009/12/12 02:54
우리는 누구나 거짓말을 하고 산다.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아주 작은 거짓말이라도 혹은 비밀이라는 고풍스러운 단어로 감싸고 산다. 이러한 거짓말들(혹은 비밀들)은 언젠가는 탄로가 나던가 아니면 영원히 묻히게 되어있다.

사실, 전 세계적으로 거짓말을 가장 잘하는 사람들이 누구냐고 묻는다면 나는 정치인들이라고 대답하겠다. 정치인들은 진실을 말하지 않는다. 정치인들의 적은 정치인들이므로. 포커판의 프로도박사들과 마찬가지다. 국민들은 포커판의 칩이나 마찬가지다.

정치인들의 거짓말에는 명분이 있다.

나라를 위해서. 국민을 위해서.

정당해보인다. 정말로 나라를 위하고 국민을 위한 것이라면.

비유를 들어보면 정치판은 포커판과 같다. 정치인들은, 포커페이스를 유지해야하는데 그렇지 못한 사람들도 있다. 대표적으로는 노무현 전 대통령이 있겠다. 그는 타고난 도박사는 아닌 것이다. 승리를 위한 패를 가지고 있으며 그 패를 유효적절하게 사용할 수는 있지만, 장거리 게임에는 어울리지 않는 것이다. 뻔뻔함이라는 것이 부족하다. 어쩌면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노무현 전 대통령을 존경하는지도 모르겠다. 그는 도박사였고 좋은 패도 있었으며 승리했지만 2라운드까지 가지는 못했다. 2라운드까지 가기엔, 그는 뻔뻔하지도, 거짓말을 하지도 못한 것이다.

나는 원래 정치에는 별 관심이 없는 사람이다. 내가 관심있는 것은 이 블로그에 나왔다시피 한정되어 있다. 펜과 종이, 글을 쓸 수 있는 작은 공간, 사랑하는 부모님과 여자친구, 책과 영화 같은 것들이 전부다. 하지만 정치는 아니다. 정치판은 도박판보다 더 고난이도의 무엇을 요구하는 곳이다. 나같은 사람들은 끼어들수도 없다.
그래도 가끔은 신문을 보고 뉴스나 토론 프로그램이나 시사프로그램을 본다. 정치관련된 이야기들을 보고, 그들의 인터뷰를 보면서 나는 미세하게나마 정치에대해 관심을 갖게 되었다.

어떤 정당이든지 야당일 때는 다양한 의견들을 내놓는다. 국민들을 위한 당 처럼 보이는 것이다. 그러나 야당이 여당이 되면 사정은 변한다. 더 유리한 패를 쥐게 된다. 확보한 칩들도 많다. 배팅을 해야하는데 내가 가진 카드를 상대(야당)가 보면 곤란한 것이다.

우리는 정치판을 뉴스나 신문으로 보면서 평생의 도박 중계를 실시간으로 보고 있는 것과 같다. 가끔은 그들이 내 놓는 패를 보면서 대단한데? 라고 생각할 때가 있다. 가끔은 배팅을 하지 말고 그냥 죽었어야 했는데 싶을 때고 있다. 정치는 프로들의 싸움이다. 시사 전문가들은 일종에 해설자들이다. 바둑에서 수를 해설해주는 전문가들처럼 말이다.

국민들의 관심사는 정치인들의 게임에 우리가 얼마나 편안해지는가이다. 그들의 패를 우리는 읽을 수가 없다. 내가 응원하는 편이 보다 좋은 패를 들고 상대방을 멋지게 속일 수 있는 포커페이스와 거짓말을 가지고 있기를 바라는 것 뿐이다.  

한나라당과 민주당의 게임은 그래서 흥미롭다. 현재는 여당인 한나라당의 패가 더 괜찮아보인다. 그러나 민주당은 현재 포커페이스를 유지하고 있다. 그들에게 노림수가 있을지도 모른다. 여당이 포카드를 들고 자신만만해 있다면 야당은 숫자 하나 빠진 스트레이트 플러시를 들고 있는 것이다. 다음에 받을 카드가 어떤 카드인가에 따라 스트레이트 플러시가 될 수도 있고 아무것도 아닐 수도 있다.

가끔은 정치판을 실제로 구경하고 싶어질 때가 있다. 고 이주일씨가 정치판에 뛰어들고 나서 코미디 한 번 잘 배웠다고 말씀 하신 것이 생각난다. 정치인들의 세계는 그야말로 프로들이 득실거리는 세계인 것이다. 그들의 세계를 구경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요즘들어 가끔 난다.

그러고보니 우리 학교에도 시의원이네 뭐네 정치로 나가고 싶어하시는 분들이 계신 것 같다. 프로가 되고 싶은 것이다. 내가 얼마나 거짓말을 잘하는지, 포커페이스를 얼마나 유지할 수 있는지, 행운이 얼마나 있는지 궁금한 사람들이다. 그들의 용기가 대단해 보인다. 오래된 홍콩영화 도신에서 슬로우모션으로 걸어가는 주윤발 같다.

정치판을 전쟁터로 표현하는 건 너무 평범해보인다. 전쟁터에는 숨을 곳이 있다. 운이 좋아서 호주머니에 넣어둔 지포라이터에 총알이 박혀 목숨을 구할 수도 있다. 항복하면 제네바 협정에 따라 포로로 대우 받을 수 있다.  
포커판은 그렇지 않다. 보호해줄 곳도 없다. 손에 들고 있는 것은 오로지 몇 장의 카드 뿐이다. 승패는 확실하다. 지면 물러나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정치는 잔인하다. 포로도, 동정도 존재하지 않는다. 오로지 내가 쥐고 있는 패와 포커페이스, 그리고 거짓말이 살길이다.
나는 그래서 좋은 정치인이든 나쁜 정치인이든 그들을 존경한다.
대단한 것이다. 때로는 목숨을 걸어야 하고 자비란 존재하지 않는 곳에서 견딘다는 것은 노력만으로는 부족하다.

요즘 정치판은, 다른 어느 때보다 더 달아올라있다. 승패는 곧 결정이 날 것이다. 누군가는 카드를 구겨버리고 자리에서 일어날 것이며 누군가는 칩을 쓸어 담을 것이다. 그것이 누가 될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 그저 예상만 할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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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문학판은 여전히 정체중

2009/12/07 19:53
엊그제, 저녁 식사를 하고 있는데 갑자기 뉴스에서 요시모토 바나나가 나왔다. 한국에 자신의 소설을 출간한 기념으로 방한을 했다는 것이다. 하루키가 방한 한 것도 아니고, 요시모토 바나나가 우리나라에서 그렇게 인기가 있던 존재였던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도 뉴스에 나올 정도로 말이다.

모 대형서점 가판대에는 다음과 같이 적혀있다.

'한국 소설이 재미 없다구요? 읽어보세요'

국내 대형서점 조차도, 우리나라 소설이 재미 없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다. 아니, 오히려 더 띄워주지는 못할망정 아예 처음부터 '재미없다'는 것을 전제로 시작한다. 평소에는 아무생각도 하지 않던 사람들 조차 '한국 소설이 그렇게 재미가 없었던가?' 라고 생각하게 될 법한 문구다.

사실, 국내 소설이 이렇게 천대받는 것에는 다 이유가 있다. 대형서점을 탓할 것만도 아니라는 이야기다. 정작 일본작가는 뉴스에서도 띄어주면서 우리나라 작가는 겨우 라디오방송에서나 만나볼 수 있다. 최근들어 '무릎팍 도사'에서도 작가들이 왕왕보이긴 하는데 그들은 이른바 이름만 대면 누구나 아는, 그런 대단한 작가들인 것이다.

한때 신경숙의 소설이 백만부가 팔렸다고 해서 난리가 난 적이 있었다. 신경숙. 요즘 유행하는 광고로 따지면 이런 것이다.

'삼성이니까. 확실하니까.'

그렇다. 신경숙이니까. 확실하니까. 대한민국 문학판은 확실한 작가들은 확실하게 밀어준다. 이름만 대면 기본은 팔아재끼는 작가들. 그렇다고 이 작가들을 폄하하려는 생각은 눈꼽만큼도 없다. 이 작가들은 나름대로 자신들만의 세계를 견고하게 구축했다. 실제로 대한민국 문학계의 주축돌이라 할 수도 있다. 흔히들 대한민국 국민은 먹고 살기 바빠서 책 안읽는다고들 하는데 그런 나라에서 백만부를 팔았으니 확실히 존경할만 하다.

반면에 어느 잡지 기사에서 모 평론가의 인터뷰를 본 적이 있는데 그 평론가가 말하기를 김연수도 책팔아서 먹고 살기는 힘들지 않겠느냐고 했다. 김연수. 나름대로 대단한 작가라는 생각을 하고 있다. 박민규도 만만찮다. 이 두 작가는 사실 대한민국 문학계의 현재이자 미래이다. 그런데 그들은 지금 절벽을 기어오르고 있다. 위에서는 돌덩이들이 굴러 떨어져 그들의 손을 찍어대고 있다. 그렇게 힘겹게 기어올라 상처투성이의 몸으로 문학판의 주류에 올라서더라도 백만부를 팔지는 못한다. 신경숙은 팔았는데. 황석영은 무릎팍 도사에도 나왔는데.

대한민국은 대대로 변화를 두려워하는 나라다. 확실한 것은 제대로 밀지만 불확실한 것은 철저히 배제해 버리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조심스럽고 안전해 보이지만 따지고 보면 그리 안전한 것도 아니다.
예컨대 신경숙 다음에는? 황석영 다음에는? 차세대 신경숙이나 차세대 황석영을 키우려고 하지 않는 것이다. 일단 현재 안전한 길로 가는 것이다. 표지판을 따라, 지도를 보고 가장 최적의 길을 알려주는 네비게이션을 켠 채 언제나 영원할 것 같은 길을 가고 있는 것이다.
기업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삼성이나 LG에만 안주할 것이 아니라 차세대 삼성, 차세대 LG를 키워야 하는 것이다. 더 나아가 그 이후까지 몇 수 앞을 바라봐야 하는 것이다.

우리나라 문학판이 정체되어 있다는 가장 큰 예는 바로 장르문학의 부재이다.
나는 도대체 국내에서 제대로된 스릴러 소설, SF소설, 팬터지 소설을 본 적이 없다. 우리나라 작가가 쓴 추리소설이나 스릴러 소설은 일단 서가 저 안쪽에 찌그러져 있다. SF소설은 단편집에나 몇 번 실릴 뿐이다. 팬터지 소설은 대본소 만화 찍어내듯 기본이 열 권이고 그나마도 어디서 많이 봐왔던 설정이다.
내가 책을 출판하면서 몇 가지 알아낸 것이 있는데 서점마다 책을 위치하는데 돈이 든다는 것이다. 가판대에 책을 얹어놓으려면 책꽂이에 꼽아두는 것 보다 돈을 더 지불해야한다. 자본주의 사회이기 때문에 이것도 서점을 탓할바는 아니다. 문제는 가장 사람들이 많이 발길을 멈추는 가판대에 우리나라 작가의 소설들이, 그것도 장르소설이 몇 권이나 진열되어있느냐는 것이다. 그래도 예전에는 이영도의 소설들이 눈에 띄었지만 최근에는 그 조차도 잘 보이지 않는다. 한국의 순수문학을 진열해 놓은 가판대에는 '한국 소설 재미 없죠?' 따위의 말이나 적혀있다. 일본소설 코너가 한 복판에 따로 있고 무라카미 하루키는 아예 코너를 따로 빼놓는다. 스릴러 소설 코너에는 서양의 소설들이 즐비하다. 대부분 다빈치 코드 유사품들이다. 우리나라 작가들은 발을 붙일 틈이 없는 것이다.

그래서 신경숙의 백만부 돌파는 한편으로는 의미있는 일이기도 하다.

어쨌든 외국 작가들을 재낀 것이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게 아니다. 더 많은 작가들, 더 젊은 작가들의 책들이 50만부, 백만부를 팔아야 하는 것이 정상이다. 하루키 코너를 따로 빼내는 대신, 김훈이나 신경숙 같은 잘 팔리는 작가들의 코너를 따로 만들어야 하는 것이다. 국내 장르소설 코너가 따로 있어야 하고 젊은 작가들의 소설을 더 많이 광고해야 하는 것이 정상인데 현실은 그야말로 시궁창이다.

대한민국은 아직도 기존의 관습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안전한 것, 확실한 것. 나이먹은 사람들과 말싸움을 해 본 적이 있으신가? 나는 있다. 몇 년 전에 노점장사를 할 때였다. 오리지날 노스페이스 점퍼를 '메이드 인 차이나' 라는 이유만으로 가짜라고 우기신다. 아니라고 합리적으로 설명을 드렸다. 어르신들은 이렇게 합리적으로 대들면 마지막에 꼭 결정타를 날리신다.

나이도 어린 것이...

나이도 어린 것이 어르신에게 대들면 안되는 것이다. 그것이 아무리 합리적이고 제대로 된 이유라도 말이다. 어르신들의 생각을 바꾸려고(혹은 변화시키려고) 노력하면 싸가지 없는 어린 것이 되는 세상이다.
이것은 버르장머리 없는 것과는 다른 이야기다. 주변에 어르신 붙잡고 우리 모두 핸드폰은 어디것을 사시겠느냐고 물어보시라. 대답은 한결 같으실 것이다.

삼성이니까. 확실하니까.

노키아나, 모토로라나 애플의 제품들을 권해보시라. 그 분들은 겁부터 먹으신다. 확실하지 않은 제품들이기 때문이다. 주변에 노키아, 모토로라, 애플의 간판을 본 적이 없으신 것이다. 그 분들을 비난 할 수 없다. 세상이 그러니까.

다시 문학이야기로 돌아가보자.

나조차도 우리나라 소설을 잘 읽지 않는다. 창피하지만 사실이다. 그런데 나에게는 핑계거리가 있다.
글을 쓰는 사람들에게는 욕심이 있다. 내가 미처 찾아내지 못했던 단어, 내가 미처 구사하지 못했던 문장을 다른 작가들이 쓴 것을 보면 질투가 나는 것이다. 내가 힘들게 고생하며 겨우 써낸 문장을 다른 작가들이 이미 써놨다면.

저 새끼 표절한거 아냐?

이런 소리를 들을까봐 걱정이 되기 시작한다.
반대로 내가 표현하고 싶었던 문장이 있는데 그걸 차마 표현하지 못한 상태에서 다른 작가가 써놓은 것을 보면 솔직한 심정으로 그 문장을 훔치고 싶다.
그럼 또 이런 소리가 들리겠지.

저 새끼 소설 누구누구랑 비슷한데?

나는 그래서 우리나라 작가들, 특히 동시대 작가들의 소설을 잘 읽지 않는 편이다. 비겁한 변명이라고 비난해도 할 말이 없다. 글쓰는 분들이라면 내 심정을 충분히 이해할 것이다. 이것은 일종의 질투심이다. 저건 내 문장인데. 마치 내 여자가 다른 남자와 바람을 피우는 것 같은 기분마저 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근 일 년간은 우리나라 작가들의 소설을 꽤 많이 읽은 것 같다. 문예지에 단편소설들이 실려있으면 꼼꼼히 챙겨보는 편이다. 그들의 장점을 겸허하게 수용하되 자존심은 잃지 않는 것이다. 그들의 단점을 집요하게 찾아내서 내 장점으로 만들기도 한다. 치사해 보여도 어쩔 수 없다. 그것이 공부니까.
아무튼, 최근 작가들의 글을 보자면 사실 좀 심심하기도 하다. 박민규의 소설은 흥미진진하고 김연수의 소설은 감각적이지만 다른 작가들의 소설들은 한마디로 지루한 것이다. 문장도 멋지고 구성도 훌륭한데 결론적으로 재미는 없다. 그러니 대형서점에서 한국문학 재미 없죠? 따위의 말을 할 법도 한 것이다.
그런데 이런 재미없는 소설을 쓰는 작가들에게 뭐라고 할 수는 없는 법이다. 대한민국의 문학계가 요구하고 있는 것을 쓸 뿐이다. 아까도 말했듯이,

대한민국에서 변화는 눈을 씻고 찾아볼 수 없다.

다른 나라로 꺼지세요, 영어로 쓰시던가, 일본어로 쓰시던가.
라고 말씀을 하신다면 역시 할 말이 없다. 나는 찌그러질 뿐이다. 내가 무슨 힘이 있겠는가? 겨우 소설 한 편 내고 그것도 얼마 안가 사장되었는데.

반면에 무라카미 하루키에 대한 우리나라의 애정은 대단하다. 나중에 따로 포스팅을 하겠지만 1Q84는 재미는 있으나 그렇게 열광적인 소설은 아니라는 것이다. 이제 겨우 1권의 절반을 읽었을 뿐이지만, 기존의 하루키 소설의 진행상황을 보면 뻔하다. 사실 하루키의 소설은 노르웨이의 숲(상실의 시대) 이전의 소설들이 백미였다. 노르웨이의 숲이 절정에 이르렀다면 그 이후부터의 하루키는 이전의 하루키가 아닌 것이다. 요즘에 여기저기서 즐겨쓰는 용어로 말하자면 무라카미 하루키 시즌 2 정도랄까? 그러다가 해변의 카프카에서 비로소 무라카미 하루키 시즌 3가 시작되는데 대부분 아시다시피 시즌 1을 능가하는 것은 없는 법이다. 게다가 이 대단한 소설이 읽다보면 왜 이리도 오타가 많은지.

어쨌든 하루키 소설은 변화가 없다. 그래서 우리 사회에서 이렇게 대단하게 받아들여지고 있는건지도 모른다.

하루키니까. 확실하니까.

확실히 본전은 뽑는 작가니까.

이 포스팅의 요지는 이제 우리나라 문학판도 좀 변화를 가져야 하지 않겠는가 하는 점이다. 우리나라 작가들을 보다 더 띄워줘야 할 필요가 있다. 더 이상 대한민국 국민들은 먹고 살기 바빠서 책을 읽지 않는다는 변명은 통하지 않는다. 신경숙이 증명해보였다. 요즘에 버스나 지하철이나 기차를 보면 책을 손에 든 사람들이 확실히 많아졌다. 책 한 권의 가치가 드디어 조금씩이나마 인정을 받게 된 것이다. 나는 오늘도 기차 안에서 신경숙의 소설을 읽고 있는 학생을 보았다. 바로 내 옆에 앉아있었다. 젊은 학생이 PMP로 영화나 보고 있었던 것이 아닌, 책을 읽고 있는 것이다.
젊은 작가들의 재미있는 소설들도 점차 늘어나고 있다. 비록 한국 소설 재미 없으시죠? 따위의 문구가 적혀있어도 한국 작가들을 위한 별도의 코너도 마련되어 있다. 출판사들은 차츰 문학상의 숫자도 늘리고 있으며 액수도 커져가고 있다. 이것은 바람직한 현상이다. 거기에 더해 이제는 젊은 작가들을 좀 밀어주어야 할 때도 된 것이다. 일본에서 김연수의 소설이 백만부 팔렸다는 소식을 TV뉴스로 보는 날이 온다면 나는 비록 내가 쓴 소설이 아닐지언정 행복할 것이다. 왜냐하면 나도 언젠가는 그렇게 될 수 있는 날이 올거라는 희망이 생기기 때문이다.

윗분들이 그렇게도 좋아하는 미국도 변화를 택했다. 흑인이 대통령을 했고 그 사실을 우리는 마구마구 찬양하지 않았던가? 우리도 변화가 필요하다. 누군가 나에게 그랬다. 글쟁이는 가난하다고. 나는 그 말을 부정하고 싶다. 글쟁이도 먹고 살아야 글을 쓰지 않겠는가? 비록 돈벌이는 안되어도, 많은 사람들이 내 글을 읽고 울고 웃어준다면 그 보다 더 행복한 것은 없으리라. 문제는 많은 사람들이 내 글을 읽고 울고 웃어줄 수 있는 기회가 없다는 것에 있다. 한국작가들이 많이 팔리면, 후배들은 자신의 글을 다른 사람들이 읽어줄 수 있는 기회를 더 많이 얻게 될 것이다. 무라카미 하루키 처럼 외국을 배회하면서 느긋하게 클래식이나 재즈를 연주하는 바에 앉아 와인이나 마시면서 인생을 즐기는 작가들이 우리나라에도 생긴다면, 많은 후배들이 더 용기를 가지고 도전을 할 것이다. 선배 글쟁이 부터가 글쟁이는 배고파요. 투잡해야해요. 노가다 뛰어서 한끼 식사 해결하고 대필해서 애들 학교 보냈어요. 같은 말을 한다면, 후배들은 시작도 하기 전에 기가 죽을 것이다.

변화. 사실 최근의 대한민국에 가장 요구되는 단어이다. 우리에게는 변화가 필요하다. 사회 각 분야에서 변화는 긴급하게 수혈해야 할 피다. 그런데 이 변화라는 피는 어느샌가 희귀 혈액이 되어 버린 것이다.
우리나라 문학계도 변해야 한다. 고품질의 SF와 한 여름날 오금이 저릴 정도의 서스펜스가 살아있는 스릴러 소설과 눈만 감으면 다른 세계에 있을 것 같은 환상적이고 독창적인 팬터지가 필요하다. 백만부 작가가 하나 둘이 아닌 수십명이 나와야 한다. 문학이라는 예술을 탐미하는 젊은이들이 더 늘어나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위에 분들은, 그들의 롤모델이 되어주어야 한다.

하지만 정말로 중요한 것은, 변화되기만을 가만히 앉아 지켜보기보다는 우리가 변화를 시킬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나부터 변화해야 한다. 좋은 글을 쓰고 변화의 선봉장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강해져야 하는 것이다. 무슨 새마을운동 선전 문구같다.
결론은 이렇다.

용기를 잃지말고 죽기살기로 글을 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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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오랜만에 술술 읽히는 글을 보았습니다.
    고맙습니다...^^

  2. 읽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

  3. 좋은 지적하신 글 잘 읽었습니다.
    정체된 우리 문화계에 변화가 있으면 좋겠습니다.

  4. 저도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덧글 감사합니다.

  5. 정말 공감합니다.
    믿을 수 있는 사람만 밀어주다가 그 다음은? 그 다음도 생각해야 하는 것인데..
    줄리안님 잘 보고 갑니다.

  6. 덧글 감사드립니다. ^^

펜탁스 K200D가 다시 돌아오다

2009/12/04 12:51

일전에 20년지기에게 빌려주었던 펜탁스 K200D가 43리밋과 21리밋 렌즈와 함께 돌아왔다.
한동안 사진을 찍을 여유가 없었기 때문에 빌려주었던 것이지만 막상 내 품을 떠나있을 때는 아쉬웠다.

나는 펜탁스 DSLR을 모두 두 대 가지고 있다. 두 대 모두 사연이 있는 카메라들이다.
K100D Super는 내 인생의 첫 DSLR이다. DSLR이 너무 가지고 싶던 시절, 여친님이신 SUE가 K100D Super를 구입하시고 얼마지나지 않아 나도 바로 구입했다. 카메라의 LCD에서 보여지는 이미지가 너무 좋아보였기 때문이다. 커플 DSLR이라며 둘이 좋아했던 추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K200D는 바디가 너무 잘 나와서 구매안할래야 안할 수가 없었다. 방진방습, 세로그립, 뛰어난 성능. 보급기의 껍질을 두른 중급기나 다름없었다. 투다이얼이나 버튼 조작의 편리성 때문에 K20D를 구입하려 했지만 K200D를 보고 바로 포기할 수 밖에 없었다. 가격차이가 꽤 많이 났었던 것이다. 매장에서 K20D를 구입하고 계산까지 마쳤다가 다시 K200D로 마음을 바꾸게 되었다.
K200D는 내가 방황하던 시절에 좋은 친구가 되어주었다. 심란했던 한 때, 나는 약 6개월 동안 사진만 찍었던 적이 있었다. 하루에 5~6시간씩 걸으면서 사진을 찍은 것이다.
주로 꽃과 벌들을 찍었는데, 그 때 처럼 마음이 편했던 적은 없었다.

사실 사진을 찍는데 바디는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얼마나 편하게 사진을 찍을 수 있는가 는 부차적인 문제이다. 중요한 것은 나의 시선이다. 요즘 보급기들은 이러한 나의 시선을 포착해주는데 별 무리가 없다. 그렇다고 값비싼 중급기나 플래그십이 필요없다는 말은 아니다. 과연 내가 얼마나 사진을 찍을 것이며 어떤 피사체를 찍을 것인가를 꼼꼼히 생각해본다면, 보급기로도 내가 표현하고 싶은 것은 얼마든지 할 수 있다는 의미다.

그런 의미에서 위에 언급한 펜탁스의 두 보급기종은 훌륭하다. 카메라 본연의 기능에 충실한 것이다. 게다가 보급기 답지 않게 성능도 출중하다. 아쉬운 점이라면 K200D는 더 이상 판매를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어쨌든 카메라가 돌아왔으니 이제 다시 카메라를 매고 돌아다닐 일만 남았다. 겨울에는 겨울나름대로의 피사체가 존재하는 법이다. 나는 아직 그 피사체들을 찾지 못했다. 내 시선이 완벽하지 않은 탓이다.
이제 카메라가 돌아왔으니, 이 친구들과 함께 다시 한 번 겨울의 거리를 걸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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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과 미국의 애국심에 대한 차이?

2009/12/02 16:27
미국 드라마나 영화를 가만히 보고 있으면 애국심에 대한 이야기들이 많이 나온다.
그런데 이러한 미국인들의 애국심은 우리나라와는 뭔가 근본적인 정서가 틀려보인다.

미국인들은 정부나 정부기관들은 싫어하는데 미국이라는 나라 자체는 좋아하는 것이다.

예컨대 CIA나 FBI나 정부에 대해서 씹는 장면들이 많이 나온다. 왜 저렇게도 씹어댈까. 싶을 때도 있다. CIA나 FBI나 정부는 씹는데 미국이라는 나라 자체는 씹지 않는 것이다.

내 생각에 이 부분이 우리나라 사람들과 대조되는 부분인 것 같다.
주변에서 보통 "아...대한민국은 참 살기 힘든 나라야." 내지는 "아...좆같아서 이 나라에서 못살겠네." 라는 말들을 많이들 한다. 그러니 가만히 그 사람들의 말을 듣고 있자면 대한민국 자체가 짜증이 나고 싫어서 아예 다른 나라로 가버리고 싶어하는 것이다.

왜 우리나라 사람들은 대한민국 자체에 짜증을 내는 것일까?
언젠가 아는 지인과 대화를 나누던 도중에 돈만 있으면 가장 살기 좋은 나라가 대한민국 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웃었던 기억이 있었다. 사실 돈만 있으면 살기 힘든 나라가 전 세계에 몇이나 되겠는가?
어쨌든, 부자가 아닌 사람들이 태반인 대한민국은 살기 힘든 나라임은 분명한가 보다. 간혹 우리나라에 대한 불만을 쏟아낼 때 다른 나라들의 예를 들곤한다. 예컨대 일본이나 미국이나 캐나다 같은 나라들을 예로 든다.
우리가 보기에는 그 나라들의 시스템이나 제도 같은 것들이 무척 잘되어 있어서 부러운 것이다.

하지만 다른 나라 사람들은 자기나라를 정말로 좋아하는 것일까?

이것은 한번쯤 의심해봐야 할 문제 같다. 어쩌면 그 사람들도 자국을 싫어할지도 모른다. 우리는 TV나 영화에서만 다른 나라들을 경험하게 되는데(대부분) 직접 그 사회에 뛰어들지 않고서는 뭐가 문제인지도 모른체 마냥 그 나라들을 동경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면 대한민국에서 사는 국민들은 왜 대한민국이 짜증이 나는 것일까?
내 생각에는 대한민국이라는 나라 자체에 별 믿음이 없는 것 같다.
어차피 똑같은거.
라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뼈빠지게 일해봐야 어차피 힘들게 살거, 뼈빠지게 공부해서 대학가봐야 어차피 백수될거. 뭐 이런 식의 불만들이다.
다른 나라들은 마치 그렇지 않는 것 처럼.

우리 국민들이 이렇게 생각을 하게 된 것에는 정부의 책임도 크다. 정부나 공공기관은 마음놓고 씹되, 대한민국이라는 나라 자체는 사랑하게 만들어야 하는 것이다. 애국심이 강제적으로 생기는 것은 아니다. 애국심에는 일종의 자부심 같은 것이 필요하다. 예를 들면 어떤 아이가 가족에 속해있지 못하고 집을 나가는 것에는 다 이유가 있다. 무조건 아이의 문제는 아니라는 것이다. 부모들이 얼만큼 그 아이를 압박하고 강제했으면 아이들이 집을 다 나가겠나? 이것은 아이를 컨트롤 할 수 있는 부모들의 능력에 따라 달린 것이다.

우리는 우리가 태어난 나라를 모국(母國)이라고 한다. 우리에게는 집과도 같은 곳이다. 세계 어디를 가도 대한민국 국민이기에 우리는 안전하고 편리하다. 라는 생각을 할 수 있어야 한다.
나라는, 국민들이 국가라는 집안에서 가출하지 않고 불만이 없도록 컨트롤 해줘야 할 의무가 있다. 억지로 공부를 강요한다고, 억지로 부모들이 최고라고 강요한다고 해서 아이들이 그렇게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렇게 생각하도록 유도를 하는 것이 좋은 것이다.

그런면에서 미국이라는 나라는 애국심을 유도하는 방법이 좋은 국가라는 생각이 든다. 어딘가 모순에 가득차고 불합리한 국가이며, 타국에는 배타적인 미국조차도 자국민은 자식처럼 아끼는 것이다.
우리나라도, 타국에는 강하고 자국민에게는 부드러운, 그런 국가였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해본다. 이 포스팅 자체가 마치 초딩이 쓴 일기 같은 기분이 드는데, 한편으로는 국가라는 집에 안주해 있는 나는 아직도 부모에게 투덜대는 초딩같은 기분이 드는 것이 사실이다.

한편으로는, 매일 부부싸움만 해대는 부모들 처럼 싸움질만 해대는 정치인들을 보고 있노라면, 과연...애국심을 유도하기는 커녕 오히려 애국심을 증발시키려는 구나...라는 생각도 든다.

그러나 내 생각에는 아직도 대한민국에는 희망이 있다. 좌절할 정도의 콩가루 집안은 아닌 것이다. 우리가 의식을 한 칸 만이라도 바꿔본다면, 어쩌면 우리도 대한민국을 사랑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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